첫 수업

일상/새로운 것 2009/05/13 23:52
그림이 날림인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시간이 없어서...입니다.
그래도 마음이 여유로우니 조급할 것 없이 그렸고, 대충 그리다보니 7장 합해 20분만에 끝... 딱 봐도 스케치네 뭐네 없이 한방에 그린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지난 번 3학년 수업'체험'과는 달리 정식의 수업'실습'이며, 아이들에게는 '그저 가르치는 선생님이 담임이 아니라 교생일 뿐'인 교과 과정 중 하나입니다.
지난 번(링크)에는 한 시간 잠시 해 보는 것이라 지도안도 들고 하고 정말 날림이었는데, 이번에는... 으음...
뭐라 하기 어렵군요.





7시 반에 도착했더니 세상에, 벌써 신발장에서 실내화로 갈아신는 우리 반 아이가 있더군요.
당연히 제가 들고 있는, 자료담으려고 가져온 모 아이스크림의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겠지요. 막 보려고 하는데, 수업자료를 그렇게 쉽게 보여주면 안 되지요. 거기에 초콜렛도 있는데. 달라고 하면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막 들면서 '아이스크림 없어' '보면 안 돼' 라는 식으로 막 높이 들어올리는 식으로 해서 보냈습니다. 얌전한 아이라 말 잘 듣더군요.



제 수업은 2교시. 그러니 어디 1교시 국어 수업이 귀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참관록? 그건 오늘 교생수업 두 개 더 있으니까 그걸 적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국어 수업 참관은 저 멀리 던져두고 지도안 보면서 말할 것, 고칠 것, 다듬을 것 등등 적어가며 준비했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제 옆에서 오늘 3교시 수학을 하는 어떤 분의 행동 또한 저와 동일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칠판글씨를 참 못 씁니다. 글씨 자체는 3학년때도 애들이 '울 선생님보다 예쁘다'고 할 정도이고, 제가 객관적으로 봐도 무난합니다만, 속도가 대단히 느립니다. 글자체도 제 글씨체(저 그림에 있는 글자체)대로 썼다가는 큰일날 일이고, 글씨가 작아진다거나 커진다거나, 이상해진다거나 해서 막 지우고 다시 씁니다.

당연히 나중에 수업협의회에서도 언급되었지요. '칠판에 쓰는 게 너무 느리다'고.
그래서 '계산순서 알아보기' 부분을 미리 파일로 만들어간 게 참 다행이더군요. 그러잖아도 시간내로 못 했는데 그것마저 손으로 썼으면... 완전히 혼났겠지요.

뭐, 그 이후의 수업에서는 돌발상황이 참 많이도 생겼습니다.
바로 눈앞의, 곧 가장 가운데 앞에 앉은 아이들 둘이 티격태격 싸우고, 여자애 쪽은 울고, 기껏 ppt로 만들어 갔더니 구석의 여자애가 '안보여요~' 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애 이름을 잘못 불렀습니다...
그나마 원래 부르고자 한 아이와 잘못 부른 아이가 한 줄에 앉아 있고, 제가 교탁에서 멀리, 칠판 쪽에 서 있었기 때문에 수신호나 이름 부른 줄이나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난데없이 지명당한 아이는 손도 들지 않은 상태로 깜짝 놀라더군요.

나중에 투덜거리기를 목이 가라앉아서 사탕 물고 있었는데 제가 불러서 놀라는 바람에 사탕을 삼켜버렸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교생들은 당연히 '손 안 든 애를 시켰구나~' 정도로 생각했지요.
그 조가 상태가 엉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초콜렛을 준 것은 순전히 그 애 때문입니다. 미안해서요.



오늘 새벽 네 시에 날림으로 만든 수업용 그림입니다.
오늘 하루 제 수업에서는 시작부터 초콜렛 초콜렛 초코초코... 문제 사례로 드는 것마다 초코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 정도면 양반이지요.
더 황당한 일은 저 자신의 행동에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바둑돌 쓰면서 계산과정 확인하는 부분은 원래 없습니다. 생각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저도 모르게 그냥 해버리고 말더군요.
나중에 협의회 때 엄청 지적당한 일입니다. 계획에 없는 부분을 넣었다고요.

그런데 또 그게 보는 사람 눈에는 대단히 자연스러웠나 봅니다. 다들 멋대로 몸과 입이 움직인 제 사정은 몰라주고 '수업 직전에 집어넣었나~?' 정도로 생각하고...

그리고 말투나 판서(칠판글씨쓰기), 순서 등 미묘하게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는 본인을 몇 번이나 알아챘는지. 누가 제 몸을 멋대로 조종하고, 저는 멀리서 바라보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우리 아이들을 기특하게 여긴 부분은 바로 여기.
준비해 간 초콜렛과 종이상자, 봉투를 이용하는 활동 부분의 제 말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이 부분을 몇 번이고 수정해 가면서 쉽게쉽게 하려고 했는데 결국 포기. 그냥 운에 맡기지 뭐, 하는 생각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4개요!!!1' 하더군요. 그 대답을 바랐는데.
덕분에 이 부분은 생각보다 쉽게 나갔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초콜렛이 눈앞에 보이자 아이들이 '주세요~' 하면서 막 달려들 태세였는데,
'오늘 학습 태도가 가장 좋은 조에 주겠어요' 라는 말을 했습니다.
당연히 예상한 결과였고, 그래서 말 또한 즉각 나왔는데, 여기서 또 실수해버렸습니다.

원래는 '여덟 개 초콜렛 중에 네 개는 가장 학습 태도가 좋은 조-한 조에 네 명이니-에 주고, 나머지 네 개는 뒤에 계신 교생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께 드리겠어요' 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가져왔던 것은 9개로, 한 개는 제가 먹으려던 것이었는데. 저렇게 말했으니 애들에게 다 줘 버리고 남은 하나는 담임 선생님께 드렸지요.



교생 첫수업의 고질병, 시간초과.
저는 마지막의 학습지 가지고 문제만드는 활동을 못해버렸습니다. 수업 시작할 때 그걸 하겠다고까지 했는데도.
무엇보다 제 수업이 2교시라, 이게 끝나면 체조를 하는데 자비없는 방송이 쩌렁쩌렁 울리더군요.
결국 그대로 대충 학습정리하고 수업 끝. 급하게 끝내려고 히든카드로 쓸 만한, 가장 공부 잘 하는 애를 한방에 발표시켜서 마무리했습니다.


수업 협의회 당시 교생들의 긍정적 평가로는
'차분했다' '안정적이다' '첫 수업인데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자연스럽다' 등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저 제 표정 변화가 포커페이스에 준할 정도로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긴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표정이 잘 안 변해요. 그림으로 그릴 때야 다양하게 해보지만.

부정적 평가로는
'자료 글씨가 작다' '시간초과' 등을 시작해서 여러 문제점이 나왔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는 조금 모자랐지만, 그래도 많이 나오더군요. 첫수업 했던 나머지 세 명이 단점을 지적하기를 바랐던 이유를 알겠어요. 본인 스스로 맘대로 안 된 상태라 실망감이 많고 고칠 점이 많은 것을 아는데 좋은 말 들으면 위로처럼 들리거나 제대로 집어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특히나 '애들 칭찬이 부족했다'의 지적을 바랐는데, 보는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요.

담임 선생님 평가야 뭐... 당연한 일이지만 그리 좋지 않습니다.
제 수업 끝나고 3교시 교생 수학 2시간째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한번 제 수업의 핵심을 다시 아이들에게 짚어주셨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부족함' 판정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다른 반에서도 똑같이 한번씩 짚어주셨다니, 소중한 아이들의 수업결손을 막아보자 노력하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우리 반 담임은 수학과 사회 담당2으로, 아이들에게는 제법 엄하시지만 우리에게는 친절하시고 그만큼 엄청나게 세밀하게 지적하십니다. 수업안 하나 가지고 일일이 따지면서 다섯 시간도 넘게 지도해주시는 건 정말 저라면 못할 일입니다. 4학년 교생 중 수학과 사회 갑안을 담당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그 표현'과 한 번 지도받으러 갈 때마다 빨간줄 쫙쫙 그어지는 본인의 지도안 때문에 트라우마의 대상이지만 교생 사이에서 '전설의 6학년 4반3'으로 불리는 곳보다는 아주 양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4.


하지만 이제는 '고민해 보셔야겠습니다' 라는 말이 트라우마로 되어버렸어요.

*남은 수업이 다섯 개나 되고 당장 이틀 후에 국어 수업입니다만, 수학이 끝나니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군요.



  1. 8÷4×2와 8÷(4×2)의 계산 순서와 답의 차이를 아는 부분이었는데, 아직 괄호를 안 배운 상태였으므로 답을 예상할 때 '4'가 나와야 정상이었고 그걸 바랐지요. [Back]
  2. 광주부설초등학교는 교과분담제입니다. 한 학년 네 명의 담임이 각각 과목을 분담해서 4개 반에 전부 들어갑니다. 때문에 우리 역시 다른 과목을 지도받고 싶으면 다른 반으로 찾아 달려가야 합니다. [Back]
  3. 실습 첫주부터 많은 과제는 물론이요 한때는 6학년 여자 교생이 정장 바지도 못 입는 황당한 해프닝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그 분들 눈에는 '치마만 정장이다'라고 하시더군요. 실습부장 선생님께서 수습하셨기에, 이제 6학년 교생들도 바지를 입습니다만. [Back]
  4. 교생을 알 만큼 아는 5, 6학년. 선생님 표현대로라면 '6학년은 1학년처럼 교생을 사랑해주는 게 아니잖아요'. 거기에 요새 6학년이 보통 아이들이 아님은 부초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수업도 6교시까지 다 하니까 교생들이 수업안을 오래 쓸 시간이 없고, 내용도 쉽지 않고, 엄하고 깐깐하다는 소문이 교생 전체에 쫙 퍼지면서 '우리는 다행이다~' 소리가 이곳저곳 나왔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4학년은 아직 귀엽고 사랑스럽고 투정부리는 것도 반항적이지 않고 적당히 말 잘듣고 수업 내용 수준도 적당하고 수업도 5교시까지만 하는 등 참 좋습니다.
    그래봐야 '부초'가 아닌 다른 일반학교들. 광주에서는 농성과 계림이 되겠습니다만. 이곳들에 비하면 참 힘든 곳입니다. 다른 두 곳은 그야말로 천국이라던데... [Back]
2009/05/13 23:52 2009/05/1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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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penID Logo 아인 2009/05/15 0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래도 처음에는 어쩔 수 없지요
    처음부터 정말 잘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하다보시면 그만큼 더 좋아지시겠죠

    처음에 스크롤 보고 제법 길다 싶었는데 집중해서 다 읽어버렸네요 ^^;

    • 메이아이 2009/05/17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는 수업 일정표가 워낙 3개가 몰려있어서 발전이 보이려나 몰라요.

  2. ZELI 2009/05/15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내십시오 >_<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용?!

    저는 오늘 스승의날이라고 고3담임선생님을 뵈러 갔다가 이벤트에 휘말려 후배와의 시간을 갖게되었습니다.

    선생님처럼 인사도 받아보고 설명하는데 정말 겁나게 떨리더군요 -_-;


    앞으로의 선생님의 길에 빛이 가득하기를!(무슨성경구절같군요)

    • 메이아이 2009/05/17 0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앞에서 설명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지라 딱히 걱정은 안 되는데, 다른 교생들 수업하는 걸 보면 4번 한 학생이라도 딱 '아, 조급해하는군'이 보이더군요.

  3. 라인슬링 2009/05/16 0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긴 글이네요... ㅇ>< 그래도 집중해서 금방 읽게되더군요! ㅇㅂㅇ

    만일 제가 첫 수업을 한다면 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론 재밌을것 같은데... 문외한의 객기일까요

    • 메이아이 2009/05/17 0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첫 수업이 재밌으려면 그 소재가 재밌어야 합니다. 애들이 반응도 잘 해주어야 하고요. 영어나 체육 정도로 해 두고 애들 놀게 내버려두면 뭐, 재밌을지도요. 저는 하필 수학과 국어, 사회가 앞에 있어서 재미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긴장은 하게 됩니다...

  4. ∑Maverick 2009/05/16 2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수업하시는군요.
    저기 참관해도 되냐능... /응?

  5. 비밀방문자 2011/11/18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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