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역사추리소설이라는 타이틀만 보고 샀던 책입니다. 고1인가 그때 사서 학교에서 꽤 지루하지 않게 봤지요.
(물론 학교였으니까...)
지금 다시 본다고 해도 괜찮게 볼 만 합니다. 아마도 하권만.

주인공은 가상인물, 의금부에서 일하는 종친1입니다. 그 외 백탑파 사람들이나 왕 등의 대다수 인물은 실존인물이지요. 다만 비중이 꽤 큰 김진이 실존인물인가 가상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조 시대. 소설이 꽤 많이 보급되어서 책에서 말하듯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한 소설가가 연쇄살인 혐의를 받고 처형당합니다. 이 소설가를 잡아들인 것은 쭉 이 소설가의 소설을 애독해온 주인공. 그러나 사건은 계속 이어지고, 결국 왕이 개입하는 등 사건이 단순 연쇄살인 사건에서 조금 정치적인 면으로까지 확대됩니다.

주인공은 고문과 공맹의 가르침의 권위, 국법은 지엄하다고 믿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품을 즐기는 중간자 캐릭터입니다. 거기에 순진하지요.
그리고 그와 만나는 것은 고문과 권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왕과, 반대로 소품과 서학을 공부하는 백탑파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친우 김진은 서얼 출신에 백탑파의 기대주입니다. 버림받은 천재라고나 할까요.
(특히 정조 대왕이 어떤 왕입니까. 군사君師를 체현한, 대학자이기도 한 왕이 아닙니까)


진범을 처형한 후 정조는 도성 안의 모든 세책방(요즘의 소설 대여점)을 뒤져서 소설을 싹 모아 태우라고 합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주인공이나, 세책방 사람들에게는 꽤나 치명적인 타격이죠.
그리고 책을 불사르는 날, 주인공은 김진의 집에 찾아가지요.

김진이 애지중지 아끼던 서재 가장 안쪽에는 소설 모음에 예수 초상화, 오르간 설계도 등이 있었습니다.
여기가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고문도 처음 나왔을 대에는 금문일 따름이었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쓰는 글 가운데도 고문이 있다 이말일세.'

'여기까지 들어오는 동안 자네가 본 서책들은 모두 성현 말씀을 담은 큰 이야기들이지. 거기엔 살아가는 데 중요한 가르침들이 있어. 그 말씀들을 가슴 깊이 아로새기면 큰 실수는 하지 않고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야. 하지만 가끔은 그 옳고 옳고 또 옳은 대설보다 인간이라서 생기는 나약함이나 어리석은 실수, 검은 욕망이나 처절한 눈물을 담은 작은 이야기들이 그립다네.
(중략)
가치 없는 것에서부터 가치를 발견하는 작업, 이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하다네.'


고등학교 때 늘 입시 입시라고 하고 아이들의 고민은 너무나 익숙한 명분으로 누르던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인지, 많이 겪었기 때문인지 그때는 이 부분이 그런 점에서 공감되었습니다.

지금도 저 부분은 꽤 좋아요. 저는 역사 쪽에서 취향을 고르라면 정치사 쪽입니다만, 그래도 일상사도 나름대로 소중하다고 여기고 있으니까요.


주인공은 여기에서 '엄벌하면 없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친구는 '그래도 방법만 바뀌지 소설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방금 이 부분을 다시 봤을 때 전혀 황당한 게 떠올랐습니다.

'계속 단속하면 없어지지 않을까'
'그래도 방법만 바뀌지 공유는 사라지지 않을걸세'

...너무나 잘 어울리는군요...



  1. 종친의 기준은 대군 이하 4대, 군 이하 3~4대손(?)으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후궁 출신 왕자의 5대손인 주인공이 여전히 종친으로 불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나라에서 보조는 안 해주지요. 그러니 과거를 보고 의금부에 들어갔겠지요. 그래도 나라에서 보조해주는 범위는 넘었지만, 그래도 왕족이라서 그럴까요? 왕도 그렇고 홍국영도 그렇고 꽤 잘 대해줍니다. [Back]
2007/07/02 15:46 2007/07/0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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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브에 2007/07/03 0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마지막 말 감동입니다....;
    정조의 문체반정... 지난 학기 고전문학사 과목의 시험문제였어서 그런지 낯설지 않네요. 저도 책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2. foxer 2007/07/03 1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은 여러가지로 응용도 가능할거 같아요ㅋ

  3. 아인 2007/07/03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말이 강하군요 아하핫;;;
    스토리가 상당히 맘에 듭니다
    도서관에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ㅇ_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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