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라디오를 잘 듣지 않습니다. TV와 마찬가지로, 가끔 라디오 앞에 앉을 일이 있을 때 뉴스로 돌려놓는 정도이고, 스스로 라디오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mp3에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기능이 라디오이기도 하지요.
대신 뉴스는 착 가라앉는 단조롭고 건조한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안정감이 생깁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어머니께서 외환은행에 엔화를 바꾸러 가셨을 때 저는 차에 남아 있었습니다. 당연히 라디오를 이것저것 돌려보았지요.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 멈췄습니다.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의 이 모 교수와의 인터뷰였습니다. 조광조만 10년 연구를 했다는 이 교수는 조선 중기, 중종 재위기간(1500년대 초)의 정치상황과 조광조의 일대를 설명했습니다. 그가 그 시기에 신분 차별 철폐를 생각할 정도로 선진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던 것, 부부간의 불화를, 부모가 늘 간섭했던 당시에는 꽤 파격적으로 '당사자간의 해결'을 조언했다는 점, 실패한 것은 조광조가 아니라 중종이라는 점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교수는 실패한 것은 중종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 '조광조 같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점'을 꼽았습니다. 약 200년 후 숙종은 조광조 같은 인재를 놓친 것을 아주 아깝게 여겼다고 하지요.
중종이 반정으로 등극한 점, 반정 공신에 밀려 일관성없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지만, 왕 답게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이 군약신강의 나라라고 해도 결국 최종 권력은 왕에게 있는 것일텐데 말이지요.
조광조는 막 궁궐 안에 돌아온 어린 원자(인종)의 보양관이 되었을 때 원자에게 자신의 사상을 깊게 가르쳤습니다. 원자 역시 왕이 된 후에 그 사상을 실천하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인종은 재워 9개월만에 승하하게 됩니다. 중종의 계비이자 당시 대비였던 문정왕후가 독살했다는 말이 있지만 진상은 잘 모르겠습니다.
([조선의 왕세자 교육]에서 참고)
사회자는 여러 번 '조광조의 사상과 현대 사회의 비교'를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개혁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 교수는 '요새는 개혁이라고 하면 전부 새롭게 고치는 것으로만 안다'면서, '조광조의 개혁은 새롭게 고치는 게 아니라 이전의 잘못을 바로잡는 개혁이었다'고 합니다.
로마인 이야기 3~5권에 걸쳐서 나오는 중요한 문제가 토지 문제였습니다. 귀족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던 토지법을 '개혁'하려고 노력했던 그라쿠스 형제는 결국 암살당했습니다. 카이사르가 강력한 권력을 손에 넣을 때까지 백 년 넘게 고치지 못한 것이 토지법이었습니다. 이때의 토지법 '개혁'은 기존의, '귀족에게 유리한 점'을 고치기 위한 처방이었지요.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개혁은 아예 뜯어고친다는 의미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신문을 자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툭하면 '개혁한다'는 정부에서는 늘 이상한 정책만 쌓아둔다고 부모님께서는 불평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교수가 지적한 것 중에는 평준화 문제도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있어 평준화 하면 생각나는 단어는 오로지 학교 평준화밖에 없습니다만,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공평하게 사는 세상이 사회인가 정부의 목표라고 어렴풋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상하다... 그러면 사회주의일텐데)
이 교수는 '현대는 평준화이긴 평준화인데 하향 평준화'라면서, 조광조가 바랐던 평준화는 융평에 의한 상향 평준화였다고 합니다. 처음 '융평'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들었을 때 뒤의 '상향 평준화'와, 단어의 '융'자를 가지고 '혹시 끌어올리는 것인가' 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정답이었습니다.
(한국사상의 이해-조광조 부분 참고)
하향 평준화는 꽤 단순하게 나온 결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못하는 사람에게 맞추자'이니까요.
못하는 사람 올리기라는 문제를 덮어버리고 그저 이쪽에서 내려가주는 해결책이니까요.
1학기의 유일한 전공 과목이었던, '초등교육과 교사' 시간은 전부 발표수업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발표한 부분 중에 이것과 관련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쉽게 질문도 예상되는 문제였죠.
'건전한 교육과정은 학습자들의 수준을 고려하는 가운데 학습자들에게 최선의 학습이 일어나도록 해주는 지식을 중심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문장이었습니다.
([초등교육의 재개념화] 90쪽)
그러니 당연히 '한 반의 아이들은 수준이 다양한데 어떻게 수업을 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는게 당연했습니다.
전날 미리 이것도 예상해 두었고요. 짧은 발표 시간도 감안해서 반론 없이 밀어붙일 수 있도록 대답을 준비했습니다.
'중간 아이들에게 맞춘다' 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꽤나 단순한 대답이었습니다. 높은 아이들에게 맞추려면 밑의 아이들을 올려야 했고, 밑의 아이들에게 맞추면 당시 발표 부분의 주제였던 '학습자들에게 최선의 학습을 시킨다'가 될 수 없었지요. 깊게 생각하지 못한 채, 얕고 엉성한 주장에 근거를 적당히 붙여서, 지나치게 고자세로 대답했기 때문에 반대 의견을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현대의 문제점'은, 8글자로 요약하면 '물질풍요 정신빈곤'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조선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사람에 대한 존중이 남아 있어서 정신적으로는 아주 풍요롭과 따뜻한 사회였다'고 말합니다. 현대 사회는 물질이 중요시되고 반면에 정신적으로는 황폐해지고, 사람간의 사이는 점점 차가워진다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지요. 도덕 책에도 꼭 나왔습니다.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기 때문에 종교, 특히 동양의 종교가 서양에서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가볍게 시간때우기로 들었던 방송은 시간때우기로 끝날 정도의 가볍고 안정적인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해 볼 게 많았던 방송이었습니다. 물론 떠오른 생각은 조광조와는 관계없이 그저 듣다 보니 연쇄적으로 떠오른 것들이 많지만 말이지요.
대신 뉴스는 착 가라앉는 단조롭고 건조한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안정감이 생깁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어머니께서 외환은행에 엔화를 바꾸러 가셨을 때 저는 차에 남아 있었습니다. 당연히 라디오를 이것저것 돌려보았지요.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 멈췄습니다.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의 이 모 교수와의 인터뷰였습니다. 조광조만 10년 연구를 했다는 이 교수는 조선 중기, 중종 재위기간(1500년대 초)의 정치상황과 조광조의 일대를 설명했습니다. 그가 그 시기에 신분 차별 철폐를 생각할 정도로 선진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던 것, 부부간의 불화를, 부모가 늘 간섭했던 당시에는 꽤 파격적으로 '당사자간의 해결'을 조언했다는 점, 실패한 것은 조광조가 아니라 중종이라는 점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교수는 실패한 것은 중종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 '조광조 같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점'을 꼽았습니다. 약 200년 후 숙종은 조광조 같은 인재를 놓친 것을 아주 아깝게 여겼다고 하지요.
중종이 반정으로 등극한 점, 반정 공신에 밀려 일관성없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지만, 왕 답게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이 군약신강의 나라라고 해도 결국 최종 권력은 왕에게 있는 것일텐데 말이지요.
조광조는 막 궁궐 안에 돌아온 어린 원자(인종)의 보양관이 되었을 때 원자에게 자신의 사상을 깊게 가르쳤습니다. 원자 역시 왕이 된 후에 그 사상을 실천하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인종은 재워 9개월만에 승하하게 됩니다. 중종의 계비이자 당시 대비였던 문정왕후가 독살했다는 말이 있지만 진상은 잘 모르겠습니다.
([조선의 왕세자 교육]에서 참고)
사회자는 여러 번 '조광조의 사상과 현대 사회의 비교'를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개혁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 교수는 '요새는 개혁이라고 하면 전부 새롭게 고치는 것으로만 안다'면서, '조광조의 개혁은 새롭게 고치는 게 아니라 이전의 잘못을 바로잡는 개혁이었다'고 합니다.
로마인 이야기 3~5권에 걸쳐서 나오는 중요한 문제가 토지 문제였습니다. 귀족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던 토지법을 '개혁'하려고 노력했던 그라쿠스 형제는 결국 암살당했습니다. 카이사르가 강력한 권력을 손에 넣을 때까지 백 년 넘게 고치지 못한 것이 토지법이었습니다. 이때의 토지법 '개혁'은 기존의, '귀족에게 유리한 점'을 고치기 위한 처방이었지요.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개혁은 아예 뜯어고친다는 의미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신문을 자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툭하면 '개혁한다'는 정부에서는 늘 이상한 정책만 쌓아둔다고 부모님께서는 불평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교수가 지적한 것 중에는 평준화 문제도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있어 평준화 하면 생각나는 단어는 오로지 학교 평준화밖에 없습니다만,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공평하게 사는 세상이 사회인가 정부의 목표라고 어렴풋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상하다... 그러면 사회주의일텐데)
이 교수는 '현대는 평준화이긴 평준화인데 하향 평준화'라면서, 조광조가 바랐던 평준화는 융평에 의한 상향 평준화였다고 합니다. 처음 '융평'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들었을 때 뒤의 '상향 평준화'와, 단어의 '융'자를 가지고 '혹시 끌어올리는 것인가' 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정답이었습니다.
(한국사상의 이해-조광조 부분 참고)
하향 평준화는 꽤 단순하게 나온 결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못하는 사람에게 맞추자'이니까요.
못하는 사람 올리기라는 문제를 덮어버리고 그저 이쪽에서 내려가주는 해결책이니까요.
1학기의 유일한 전공 과목이었던, '초등교육과 교사' 시간은 전부 발표수업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발표한 부분 중에 이것과 관련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쉽게 질문도 예상되는 문제였죠.
'건전한 교육과정은 학습자들의 수준을 고려하는 가운데 학습자들에게 최선의 학습이 일어나도록 해주는 지식을 중심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문장이었습니다.
([초등교육의 재개념화] 90쪽)
그러니 당연히 '한 반의 아이들은 수준이 다양한데 어떻게 수업을 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는게 당연했습니다.
전날 미리 이것도 예상해 두었고요. 짧은 발표 시간도 감안해서 반론 없이 밀어붙일 수 있도록 대답을 준비했습니다.
'중간 아이들에게 맞춘다' 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꽤나 단순한 대답이었습니다. 높은 아이들에게 맞추려면 밑의 아이들을 올려야 했고, 밑의 아이들에게 맞추면 당시 발표 부분의 주제였던 '학습자들에게 최선의 학습을 시킨다'가 될 수 없었지요. 깊게 생각하지 못한 채, 얕고 엉성한 주장에 근거를 적당히 붙여서, 지나치게 고자세로 대답했기 때문에 반대 의견을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현대의 문제점'은, 8글자로 요약하면 '물질풍요 정신빈곤'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조선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사람에 대한 존중이 남아 있어서 정신적으로는 아주 풍요롭과 따뜻한 사회였다'고 말합니다. 현대 사회는 물질이 중요시되고 반면에 정신적으로는 황폐해지고, 사람간의 사이는 점점 차가워진다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지요. 도덕 책에도 꼭 나왔습니다.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기 때문에 종교, 특히 동양의 종교가 서양에서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가볍게 시간때우기로 들었던 방송은 시간때우기로 끝날 정도의 가볍고 안정적인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해 볼 게 많았던 방송이었습니다. 물론 떠오른 생각은 조광조와는 관계없이 그저 듣다 보니 연쇄적으로 떠오른 것들이 많지만 말이지요.



@_@ 라디오 듣다보면 꽤나 전문적인게 많죠
저는 가끔 오후 6시쯤에 경제 관련으로 하는거 듣곤 하는데
뭔가 유익한 내용도 많으면서도 이해 못하는 내용도 한가득이라 ㄱ-;;
어제 것 익숙한 내용이면서도 역시 잘 안 들린 것을 보니, 듣기에는 약한가봐요. 저...
요즘 운전면허 학원차 타고 다니다보니 라디오를 매일 듣네요~♬
뭐, 전부 내용없는거지만 ^^;
이때까지 탔던 학원차 라디오는 늘 노래만 나오던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