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석 달 만에 마지막을 올리는군요. 그동안 조금 게을렀습니다... 반성중.
(그보다도 긴 글을 쓰는게 무서웠다는게 본심입니다만)
돌아와서 동생이 '다음에 일본 또 가자~'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간 게 4년 전이니 이번에도 4년 후에 가자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4년 후에는 동생이 고3이군요. '아예 수능 친 후에 가자'고 했더니 울먹이는 동생.
...NDSL의 원망이 끝난 지금은 툭하면 '디즈니랜드 다시 가자~'고 하고 있습니다. 피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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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 19(금요일. 8일째)
라이잔 호텔 남관에서는 아침에 토스트를 200엔에 준다. 잠이 덜 깨서 헤롱헤롱한 상태의 동생을 두고 나는 1층에 내려가서 토스트를 두 개 가져왔다. 바삭바삭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구워져서 아침으로 충분했다.
푹신하고 따뜻한 침대에서, 모처럼 시간이 남았을 때 푹 쉴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에는 난바까지 가서 난카이선을 탈 생각이었다. 그러나 호텔 카운터의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난카이선이 신이마미야도 지나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난카이선 신이마미야역의 위치를 약도로 그려서 알려주었다. 지금까지의 호텔 두 곳과는 달리 영어도 한국어도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아주 친절했다.
난카이선 신이마미야역까지는 많이 걸리지 않았다. 걸어서 10분 정도. 아직 아침에 개장하지 않은 상점가를 돌아보는 것은 뭔가 신선했다. 자유여행의 매력은 이런 점에도 있는게 아닐까 하면서 두리번거렸다. 자판기 많은 것은 변함없었다.
간사이 공항행 난카이선 일반열차 표를 샀을 때, 일반열차는 11시 반에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앞에 특급이 두 개. 우리는 11시에 이미 와 있었는데.
결국 열차 도착 1분 전에 플랫폼에 있는 특급권 판매소에 가서 500엔짜리 특급권을 사서 그 직후에 왔던 특급 베타 열차를 탔다.
(알파 열차는 한시간에 한 번 정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아한 곡선형의 파란 열차. 그 안의 객실도 동그랗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KTX 특실과는 달리 마실 물이 없는 것이 흠이었지만.

특급 베타열차 내부. 이보다 한 단계 아래인 보통열차는 그냥 네모난 열차...

특급권. 500엔. 특급열차 승차권은 승차권(일반)+특급권 구성.

간사이공항행 일반열차권. 890엔.
한국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농촌 마을이 아니고서야 반드시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광주, 대전, 서울 등 '광역시' 이상급의 도시나 수도권 신도시들은 대부분 아파트나 빌딩이 많이 보인다.
일본에서는, 도쿄건 오사카건 '아파트'를 거의 보지 못했다. 주택 바다 속에 한두개씩 맨션이 서 있기는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어릴때부터 네모난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나는 2층주택이 매우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특급열차는 네 정거장 정도만 경유해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가는 도중, 다리를 지나게 되는데 넓은 바다가 꽤 시원했다. 다리에 가려진 것이 아까웠다. 그렇지 않았으면 흐릿하게라도 찍었을텐데.
공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아마 헤매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넓고 높고 복잡해서 예매확인서를 표로 바꾸는 곳을 찾는데만 10분을 넘게 썼다. 간신히 아시아나항공을 발견해서 표를 바꾸는데, 직원이 이름은 한국식으로 되어 있으나 한국어 발음이 미숙했다. 일본인 사원에게 한국어 명찰을 준 것이었을까.
겨우 표를 바꾸고 이제는 식당칸을 찾느라 또 헤맸다. 간사이공항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한쪽이 국제, 한쪽이 국내선이었다. 그런데 그 한쪽한쪽이 다 지나치게 넓어서 국제선 한부분에서도 에스컬레이터 하나 찾는 것이 힘들었다.
위층으로 올라가서 맥도날드에서 적당히 배를 채운 후에 아예 표를 보여주고 출국 수속을 빨리 끝낸 후에 면세 코너에 들어가버렸다.
투어여행으로 왔을 때는 일본에서는 부채, 중국에서는 초콜렛이나 병풍 정도를 샀지만 이번에는 딱히 살 게 없었다. 바닐라 가득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우리가 갈 게이트를 찾았는데...
게이트가 없었다.
우리가 갈 게이트는 우리가 들어온 면세점 구역에서 그 게이트 구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야 갈 수 있었다. 열차는 2분마다 한번씩 왔다. 버스의 절반정도 되는 작은 1칸 열차가 지나가는 곳들은 엘리베이터밖에 없는 텅빈 곳들이었다. 우리가 내린 게이트도 그랬다. 정확히는 '게이트'가 아니라 '게이트로 가는 곳'이어서, 계단을 내려가야 제대로 25번 게이트로 갈 수 있었다.
중국 비행기를 탔을때는 중국어-영어로 나왔지만, 이번 비행기는 아시아나 것이라서 그런지 한국어, 일본어, 영어가 잘 섞여서 나왔다. 어차피 뻔한 말이지만 영어 해석할 일이 없어서 편안했다.
기내식은 초밥과 모밀~! 늘 소고기덮밥만 보던 기내식과는 달리 꽤 맛있었다. 기내식을 다 먹기는 처음이었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서 도쿄로 가면 육지-바다-육지 순으로 보였다. 그런데 간사이 공항에서 인천으로 갈때는 육지가 거의 보이지 않고 바로 바다부터 보였다. 그리고 육지(한국땅)가 보인 후에 다시 바다가 보이고 비행기는 영종도에 사뿐히 착륙했다.
하지만 착륙할때 주변에 바다밖에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비행기가 흔들리면 꼭 바다로 떨어질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인천 국제공항에서의 입국 수속 역시 간단했다. 거기까지 가는 길만 길었을 뿐.
노란 옷차림의 아이들 한 그룹이 지나갔다. 깃발을 보니 '리더십', '종단 여행'이라는 글이 보였다. 지난 일본여행에서 돌아올때는 캐나다 대표팀이더니 이번에는 이런 여행단... 다음 일본여행에서 돌아올때도 무언가 독특한 것을 볼수 있을까.
밖으로 나와서 먼저 폰부터 바꿨다. 무뚝뚝하고 딱딱하게 응대하는 직원을 보니 상냥하게 웃으면서 맞아주었던 일본인들과 바로 비교가 되었다. 뭐, 우리 나라에서도 백화점 같은 곳을 가면 극상의 미소로 반겨주니 이건 개인차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막 일본에서 돌아온 그때는 꽤 비교가 되었다.
김포공항행 리무진버스를 탔다.주택단지가 아니라 이번에는 하얀 아파트단지가 보였다. '이국적이지 않아서' 반갑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주택이 사라져서 뭔가 답답하기도 했다.
김포공항 국내선에 내려서 저녁을 대충 먹고 시간에 맞춰 비행기를 탔다.
약 20분 후에 광주에 도착하니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어느정도 익숙한 길이었다.
돈을 약 5만 정도 남겨갔다. 어머니 말씀,
'왜 다 안썼어'
...어머니, 그렇다면 NDSL 두 개를 살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후 2주 가까이 원통함을 안고 살아야만 했다. 동생은 NDSL 광고만 보면 나를 원망했다.
(그보다도 긴 글을 쓰는게 무서웠다는게 본심입니다만)
돌아와서 동생이 '다음에 일본 또 가자~'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간 게 4년 전이니 이번에도 4년 후에 가자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4년 후에는 동생이 고3이군요. '아예 수능 친 후에 가자'고 했더니 울먹이는 동생.
...NDSL의 원망이 끝난 지금은 툭하면 '디즈니랜드 다시 가자~'고 하고 있습니다. 피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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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 19(금요일. 8일째)
라이잔 호텔 남관에서는 아침에 토스트를 200엔에 준다. 잠이 덜 깨서 헤롱헤롱한 상태의 동생을 두고 나는 1층에 내려가서 토스트를 두 개 가져왔다. 바삭바삭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구워져서 아침으로 충분했다.
푹신하고 따뜻한 침대에서, 모처럼 시간이 남았을 때 푹 쉴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에는 난바까지 가서 난카이선을 탈 생각이었다. 그러나 호텔 카운터의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난카이선이 신이마미야도 지나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난카이선 신이마미야역의 위치를 약도로 그려서 알려주었다. 지금까지의 호텔 두 곳과는 달리 영어도 한국어도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아주 친절했다.
난카이선 신이마미야역까지는 많이 걸리지 않았다. 걸어서 10분 정도. 아직 아침에 개장하지 않은 상점가를 돌아보는 것은 뭔가 신선했다. 자유여행의 매력은 이런 점에도 있는게 아닐까 하면서 두리번거렸다. 자판기 많은 것은 변함없었다.
간사이 공항행 난카이선 일반열차 표를 샀을 때, 일반열차는 11시 반에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앞에 특급이 두 개. 우리는 11시에 이미 와 있었는데.
결국 열차 도착 1분 전에 플랫폼에 있는 특급권 판매소에 가서 500엔짜리 특급권을 사서 그 직후에 왔던 특급 베타 열차를 탔다.
(알파 열차는 한시간에 한 번 정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아한 곡선형의 파란 열차. 그 안의 객실도 동그랗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KTX 특실과는 달리 마실 물이 없는 것이 흠이었지만.
특급 베타열차 내부. 이보다 한 단계 아래인 보통열차는 그냥 네모난 열차...
특급권. 500엔. 특급열차 승차권은 승차권(일반)+특급권 구성.
간사이공항행 일반열차권. 890엔.
한국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농촌 마을이 아니고서야 반드시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광주, 대전, 서울 등 '광역시' 이상급의 도시나 수도권 신도시들은 대부분 아파트나 빌딩이 많이 보인다.
일본에서는, 도쿄건 오사카건 '아파트'를 거의 보지 못했다. 주택 바다 속에 한두개씩 맨션이 서 있기는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어릴때부터 네모난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나는 2층주택이 매우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특급열차는 네 정거장 정도만 경유해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가는 도중, 다리를 지나게 되는데 넓은 바다가 꽤 시원했다. 다리에 가려진 것이 아까웠다. 그렇지 않았으면 흐릿하게라도 찍었을텐데.
공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아마 헤매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넓고 높고 복잡해서 예매확인서를 표로 바꾸는 곳을 찾는데만 10분을 넘게 썼다. 간신히 아시아나항공을 발견해서 표를 바꾸는데, 직원이 이름은 한국식으로 되어 있으나 한국어 발음이 미숙했다. 일본인 사원에게 한국어 명찰을 준 것이었을까.
겨우 표를 바꾸고 이제는 식당칸을 찾느라 또 헤맸다. 간사이공항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한쪽이 국제, 한쪽이 국내선이었다. 그런데 그 한쪽한쪽이 다 지나치게 넓어서 국제선 한부분에서도 에스컬레이터 하나 찾는 것이 힘들었다.
위층으로 올라가서 맥도날드에서 적당히 배를 채운 후에 아예 표를 보여주고 출국 수속을 빨리 끝낸 후에 면세 코너에 들어가버렸다.
투어여행으로 왔을 때는 일본에서는 부채, 중국에서는 초콜렛이나 병풍 정도를 샀지만 이번에는 딱히 살 게 없었다. 바닐라 가득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우리가 갈 게이트를 찾았는데...
게이트가 없었다.
우리가 갈 게이트는 우리가 들어온 면세점 구역에서 그 게이트 구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야 갈 수 있었다. 열차는 2분마다 한번씩 왔다. 버스의 절반정도 되는 작은 1칸 열차가 지나가는 곳들은 엘리베이터밖에 없는 텅빈 곳들이었다. 우리가 내린 게이트도 그랬다. 정확히는 '게이트'가 아니라 '게이트로 가는 곳'이어서, 계단을 내려가야 제대로 25번 게이트로 갈 수 있었다.
중국 비행기를 탔을때는 중국어-영어로 나왔지만, 이번 비행기는 아시아나 것이라서 그런지 한국어, 일본어, 영어가 잘 섞여서 나왔다. 어차피 뻔한 말이지만 영어 해석할 일이 없어서 편안했다.
기내식은 초밥과 모밀~! 늘 소고기덮밥만 보던 기내식과는 달리 꽤 맛있었다. 기내식을 다 먹기는 처음이었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서 도쿄로 가면 육지-바다-육지 순으로 보였다. 그런데 간사이 공항에서 인천으로 갈때는 육지가 거의 보이지 않고 바로 바다부터 보였다. 그리고 육지(한국땅)가 보인 후에 다시 바다가 보이고 비행기는 영종도에 사뿐히 착륙했다.
하지만 착륙할때 주변에 바다밖에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비행기가 흔들리면 꼭 바다로 떨어질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인천 국제공항에서의 입국 수속 역시 간단했다. 거기까지 가는 길만 길었을 뿐.
노란 옷차림의 아이들 한 그룹이 지나갔다. 깃발을 보니 '리더십', '종단 여행'이라는 글이 보였다. 지난 일본여행에서 돌아올때는 캐나다 대표팀이더니 이번에는 이런 여행단... 다음 일본여행에서 돌아올때도 무언가 독특한 것을 볼수 있을까.
밖으로 나와서 먼저 폰부터 바꿨다. 무뚝뚝하고 딱딱하게 응대하는 직원을 보니 상냥하게 웃으면서 맞아주었던 일본인들과 바로 비교가 되었다. 뭐, 우리 나라에서도 백화점 같은 곳을 가면 극상의 미소로 반겨주니 이건 개인차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막 일본에서 돌아온 그때는 꽤 비교가 되었다.
김포공항행 리무진버스를 탔다.주택단지가 아니라 이번에는 하얀 아파트단지가 보였다. '이국적이지 않아서' 반갑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주택이 사라져서 뭔가 답답하기도 했다.
김포공항 국내선에 내려서 저녁을 대충 먹고 시간에 맞춰 비행기를 탔다.
약 20분 후에 광주에 도착하니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어느정도 익숙한 길이었다.
돈을 약 5만 정도 남겨갔다. 어머니 말씀,
'왜 다 안썼어'
...어머니, 그렇다면 NDSL 두 개를 살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후 2주 가까이 원통함을 안고 살아야만 했다. 동생은 NDSL 광고만 보면 나를 원망했다.



NDSL의 안습 ㅠ_ㅜ
저야 PSP만 있다보니 PSP 타이틀들이 좀 땡겼었지만 결국 산건 제로;
아직도 원통합니다. NDSL...
흠.. 그런데 아직도 기억 나시는군요? (...);
뭐, 몇 년 전 것도 기억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