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고 싶은 교토입니다. 한 번 관광지 봐버렸는데 왜 또 가고싶냐면, 일단 놓친게 많지요. 거기에 소박하고 작은 도시라는 점이 꽤나 매력적이었지요. 도쿄보다도 오사카보다도 훨~~씬 끌렸던 교토 1일째입니다.
다만 사람, 외국 나가서 책임감 느끼면 수면부족도 극복하는구나...라는 것을 체감한 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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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 17(수요일. 6일째)
새벽 6시에 세면대에 가서 씻었다. 당연히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수건이 없었다. 조금 곤란했다.
일찍 간 보람은 있어서, 약 10분쯤 후에는 세면대에 사람이 몰렸다고 한다.
6시 반이 되자 방송이 나왔다. 몇분에 어느 역에 도착할 것이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여섯 시간동안 그야말로 세상 모르게 잔 동생은 완전히 팔팔한 상태로 내려왔다. 내가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도둑 걱정도 없었다. 나는 밤샘에는 익숙하기 때문에 이 상태로는 아직 충분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문제는 물집이 생긴 발이었다.
밖은 아직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 없는데...
교토역에 도착해서 바로 앞에 보이는 간이 대기실에 들어갔다. 추위를 막을 수 있고 의자에 여유가 많았다.
어차피 이 나라 사람도 아니겠다, 배고프겠다, 주변 눈치 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노부코씨에게 받은 도시락을 열었다. 유부초밥이다~!
우리 나라의 삼각형 유부초밥과는 달리 일본의 초밥은 사각형 주머니에 밥을 집어넣은 것이었다. 맛은 똑같았다. 오랜만에 먹는 유부초밥인데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더욱 맛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아침을 다 먹고 역을 구경하게 되었다. 문 연 곳이 거의 없었다. 1회용 우산 정도를 파는 매점은 다행히 문을 열었다. 1회용 비닐우산 하나와 반짇고리를 하나 샀다. 그리고 역 출입구 바로 옆에 있는 코인라커를 찾아 가방을 넣었다. 소형 라커(300엔)은 배낭 두 개를 겨우 넣을 정도였지만, 더 큰 것들은 멀리 있었기 때문에 그냥 300엔짜리에 가방을 밀어넣었다.
가끔 가방도 압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역 앞에는 시버스 정기권 판매소와 다양한 버스 승차장이 있었다. 교토 남부의 중앙에 자리한 교토역은 종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버스 승차장에는 알파벳+숫자 형태로 이름이 붙어 있었고, 비슷한 곳으로 가는 버스가 비슷한 승차장에서 정차했다.
시버스 정기권 판매소에서 시버스 1일 승차권을 샀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버스요금은 거리에 따라 요금이 늘어나지만, 1000년의 수도로 관광 명소가 많은 것 때문인지 교토에서는 약간 다르다. 교토의 중심부는 일단 220엔 구간으로 정해져서, 이 안에서는 어른 220엔, 어린이 110엔으로 탈 수 있다. 이곳만 운행하는 버스도 따로 있다. 주로 버스 뒤에서 승차권을 뽑지 않는 버스이다. 이런 버스는 내릴때 220엔만 주거나 카드를 넣으면 된다. 대다수의 명소는 220엔 구간 안에 있다.
그리고 그 220엔 구간 밖을 벗어나면 거리에 따라 요금이 늘어난다. 이쪽의 버스는 먼저 뒤에서 승차권을 뽑은 다음, 버스 앞에 있는 요금판과 자신이 뽑은 승차권 번호를 확인해서, 내릴때 해당되는 번호의 버스비를 내고 내린다. 승차권 번호는 자신이 탄 곳에 따라 다르다.
(교토의 버스는 뒤에서 타고 앞으로 내린다.)
긴카쿠지에서 돌아올 때의 버스가 이런 버스였는데, 5번 승차권은 220엔 구간이라서 요금 증가가 없었지만, 1~4번 번호판 밑의 요금은 승차장 하나를 지날 때마다 늘어나서, 교토역에 도착할 당시 1번 구간에서 탄 사람들은 거의 400엔을 줘야 했다.

교토 시버스 1일 승차권. 대인 500엔, 소인 250엔.
시버스 승차권은 처음 찍었을 때 날짜가 새겨지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이 사는 것도 가능했다. 다음날 것까지 합해서 각각 2장씩, 4장을 샀다. 표를 살 때 교토 버스노선표를 받았다. 정말 이렇게 편한 노선표는 처음봤다. 거기에 덤으로 교토가 꽤 작은 도시라고 생각해버렸다.
내가 받은 노선표는 그리 크지 않은 가이드용 종이였다. 펼치면 B3 정도의 크기가 될 종이에는 교토의 지도가 대략적으로 그려져 있었고, 거기에 버스 노선이 전부 그려져 있었다. 버스가 27개... 거기에 관광용 특수버스인 라쿠버스 세 대 포함해도 30대. 적다...
(목포에서 사는 친구 曰, 광주는 버스가 많아서 어지럽다지만, 나는 한 도시의 버스 노선이 30개라는 것에다 그걸 지도 전체에 빠짐없이 표시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래도 교토의 행정단위는 '府'. 도쿄 도의 아래이며 오사카 부와 동격이다.
동(히가시)-서(니시) 혼간지 두 개 다 교토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혼간지 두 곳 다 공사중만 아니었다면 한때 교토를 휘어잡았다는 두 절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교토역에서 더 가까운 히가시혼간지는 이게 절인지 전통 가옥인지 알 수 없는 크기였다. 한 블록의 거리를 무시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등교하는 학생들을 따라 니시혼간지에 갔다. 도쿄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에서도 남학생들의 교복은 가쿠란(차이나 컬러)이었다.
니시혼간지는 공사중이었다. 히가시혼간지보다는 더 커 보였지만 그 대부분이 출입금지라서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다. 결국 성과없이 다시 교토역으로 걸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우산을 하나 더 사버렸다. 두 명이 쓰기에는 어정쩡한 크기였기 때문이다.
아직 9시도 안된 시간이었다. 따뜻한 정기권 판매소에서 잠시 쉰 다음 우리는 바로 그 앞의 D2 정거장에서 206번을 탔다. 목적지는 기요미즈데라로 향하는 기요미즈미치. 8정거장이면 도착하는, 상당히 가까운 곳이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는 친숙함을 맛보면서 창밖 구경을 했다.
그리고 눈앞의 버튼을 보며 잠시 굳어버렸다.
'とまります(정차합니다)'
...이거 분명히 정차용 버튼인데...?
자세히 보니 이 버튼은 우리 나라처럼 창틀에도 있었고 앞자리 의자의 뒤에도 붙어있었다. 이전에 소풍 갈 때 빌렸던 화순 시내버스를 떠올리게 하는, 작은 버스 앞에는 안내용 전광판이 있었다. 우리처럼 광고 투성이가 아니었다.
'다음은 ***역 입니다'
'Next stop is *** station'
외국인을 생각한 것일까. 안내판에는 일본어(한자 혼용)-일본어(히라가나)-영어로 된 안내문이 반복적으로 지나갔다. 거기에 놀라운 것은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역은 고죠사카. 고죠사카입니다. 기요미즈데라로 가실 분은 여기에서 내리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이 그 정거장에 도착할 때까지 세 번 나왔다. 마찬가지로 영어로도 나왔다.
(사실은 고죠사카보다는 기요미즈미치에서 내리는 게 더 빠르다)
기요미즈미치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곧 한국어도 많이 들렸다. 이 사람들, 비오는데도 우산 내팽개치고 사진을 찍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니 근처 안내도가 보였고, 절 근처에서는 늘 있을 만한 기념품 가게가 가득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많은, 기모노차림의 헬로키티~ 아쉽게도 이번에는 인형이 없어서 뭘 살 수 없었다.
고죠사카에서 오는 길과 기요미즈미치가 만나는 길, 그 옆에는 3년 고개(산넨자카)가 있다. 이쪽으로 가면 야사카 신사로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와보기로 정한 곳이었다. 3년 고개의 위치는 잘 모르겠지만, 근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거기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르막길을 얼마 올라가자 곧 절이 보였다. 기요미즈데라였다. 그 옆에는 신사 하나가 작게 있었다.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입장표. 300엔.
본전 안에 들어갔다. 아무리 봐도 일본 절은 절인지 신사의 변형인지 알 수 없었다. 절 안에 기념품 가게와 오미쿠지가 이곳저곳에 분포해 있었다. 신사와의 차이점이라면 파는 사람이 하카마 차림의 무녀가 아니라 절에 고용된 듯한, 평범한 옷차림의 어르신들이었다는 점이다.
아직 비는 그치지 않았다. 기요미즈데라는 맑은 약수터가 명물이라는데 그곳까지는 내려갈 수 없었다. 길이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단지 그 안에서만 몽환적인, 안개낀 산을 한참 구경하다가 내려왔다.
오미쿠지를 하나 뽑았다. 100엔. 산가지 하나 뽑았더니 숫자 '6(六)'이 나왔다.
결과는 말길(末吉). 그 외의 말은 해석할 수 없었지만 일단 흉(凶)이 아니니 나쁘지는 않겠다고만 생각했다.
기요미즈데라 옆에는 토리이 하나가 있었다. 지주 신사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신사지, 기념품 가게나 다름없었다. 신사의 목적은... 연을 이어주는 것이라나?
비는 거의 다 그쳤다.
그 후에 기념품가게 사람에게 물어서 3년 고개로 들어섰다. 여기에서는 안 넘어지거나 구르거나 둘 중 하나. 길도 내리막길인데다 방금 전까지 비가 왔기 때문에 미끄러웠다. 3년 고개에 이어 바로 2년 고개(니넨자카)가 이어지는데, 동생은 하필 2년 고개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지도를 보면서 야사카 신사를 찾아가는데 길이 맞는지 궁금해서 식당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제대로 가고 있었다.
내리막길을 지나 큰길로 들어섰다. 여기에서는 일직선으로 쭉 가면 게이샤의 거리라는 기온과 그 앞의 야사카 신사로 향하게 된다. 기온 거리는 쉽게 보였다. 모든 인도에 빨갛게 천이 덮고 있었다. 비가 올때는 우산 없이 다닐 수 있어서 괜찮겠다 싶었다.
야사카 신사는 태양신 아마테라스 여신의 동생인 물의 신 스사노오를 모신다고 안내문에 적어져 있었다. 사람이 꽤 많았다. 동생은 비둘기를 졸졸 따라다니고, 처음으로 까마귀를 보았다. 완전히 새까맣고, 깍깍 울었다.
일본에서는 우리와 반대로 까마귀가 길조라고 했던가...?
점심이라도 먹게 기온 거리에 들어섰지만, '교토는 입다가 죽고 오사카는 먹다가 죽는다'는 말처럼 주변에 보이는 것은 식당보다는 옷가게였다. 중간에 기모노 차림의 여자들을 두셋 봤는데 게이샤인지 마이코(견습생)인지 그냥 기모노 입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간신히 토스트 가게를 찾아내서 고픈 배를 달랬다.
그 후에 기온 승차장에서 57번을 타고 교토 회관 미술관으로 갔다. 57번은 뒤에 발권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220엔 구간 밖을 다니는 버스였던 것 같다. 206번과는 달리 앞에도 요금표가 있었다.
회관 미술관 구경은 해볼까 했지만 대영 박물관이나 루브르 정도의 크기가 아닌 한 미술관에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아서 포기. 이곳에서 조금만 걸으면 헤이안 신궁이었다. 회관 미술관에서 헤이안 신궁을 찾는 것은 쉬웠다. 사거리로 나가자 바로 신궁의 토리이가 보였기 때문이다.

헤이안 신궁은 이름대로 '신궁' 이다. 분명 천황 몇 사람을 모신 신사였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이름 안에 일본사 책에서도 본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대극전(大極殿)까지로, 뒤의 본전에는 신주와 일반인 몇 명이 있었지만 일단 밖에서는 들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는 단체관광을 온 사람들이 어디론가 들어가고 있었다. 헤이안 신궁에는 '신원(神苑)'이라는 정원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곳으로 향했다. 이 정원 구경도 예정에 있었던 것이었다. 1인당 600엔이었다.
인공인지 천연인지 알 수 없는 호수와 주변의 숲길,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장식된 다리형 복도를, 막 비가 그친 후의 상쾌함에 젖어가며 구경했다. 수학여행때 본 이화원에 비하면 초라했지만, 크기와 화려함으로 밀어붙이려고 군비까지 빼돌린 태후의 정원에 비하면 훨씬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화원을 지으려고 서태후는 해군 경비까지 가져다 썼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편 전쟁에서 졌다고 한다.)
신궁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신원을 구경하고 나왔다. 점심을 기온에서 이미 먹었기 때문에 이제 갈 곳은 긴카쿠지 하나뿐이었다. 지도대로라면 교토 회관 미술관앞에서 5번이나 100번을 타면 되는데, 어째서인지 우리가 내렸던 곳에는 그 두 버스가 오지 않았다. 결국 지도를 보며 쭉 걸어가서 겨우 버스 승차장을 찾아냈는데, 이 승차장은 미술관 다음역인 동물원1역. 멀리 걸어올 필요 없이 그 근처의 길을 건너서 찾았더라면 금방 5번이나 100번 정거장을 찾았을텐데...
긴카쿠지미치에서 내렸다. 길을 건너자 바로 '철학의 길'이라는 것이 보였다. 절로 향하니까 '철학'을 붙였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인력거를 보았다.
말로만 듣던, 일제시기의 소설에나 등장할 만한 인력거가 아직 교토에 남아있었다. 다리아프니까 절 구경하고 돌아갈때 타볼까 했지만 1인당 2000엔을 넘는 요금 때문에 주저했다. 결국 돌아갈때도 그냥 돌아갔다.
후에 어머니께 '비싸도 그런 건 경험이다' 라며 혼나게 된 것은 당연하다.

은각 관음전 참배표. 500엔.
(말이 참배표지, 이거 완전히 부적...)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금각사처럼 은각사도 은으로 되어있을까~ 하고 궁금하게 여겼던 적이 있다. 그러나 긴카쿠지는 은이 아닌 약간 차분한 색을 자아내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 이와 반대편에 있는 화려한 금각과는 완전한 대비를 이룬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아름다운 은각을 연출해낸다는 은각 관음전은, 지금은 그 앞의 모래 장식에 밀려 허름한 전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교토 북동부에 긴카쿠지가, 북서부에 킨카쿠지가 있어서 거의 반대편에 있다)

표를 살때 받았던 팜플렛을 보니 긴카쿠지에는 크게 볼만한 것이 관음전(은각)과 본당 정도였다. 약도를 보면 산을 올라가서 전망소와 달맞이산까지 가게 되고 그 뒤에 '大'가 그려진 산이 있지만, 아무튼 우리 나라의 화려한 절, 일본의 신사와 꼭 닮은, 중앙에 본전(대웅전)이 있고 그 옆에 몇 개의 전각이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절이라기보다는 소박한 귀족 저택 정도의 이미지였다.
긴카쿠지에서 나올 때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이상하게 교토에는 이곳저곳에 아이스크림, 특히 소프트 아이스크림 집이 많았다. 그리고 반드시 녹차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여기가 아이스크림과 관련있는 도시인가?
긴카쿠지미치에서는 100번이나 17번을 타면 교토역 직행이다. 17번을 타고 느긋하게 앉았다. 항상 버스마다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작은 버스였지만 앉을 공간은 넉넉하게 있었다. mp3을 들으며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동생을 받쳐주며 창밖을 내다보며 30분 정도를 앉아있었다.
교토역에서 내린 후에 바로 가방을 챙겨서 나왔다. 미리 출력한 약도를 따라 호텔을 찾아갔다. 아아, 한블록 = 10분이라고 계산했어야 했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한블록 = 5분 이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도쿄의 것보다는 더 짧았고 주변에도 이것저것 많았다.
호텔의 이름은 K's House Kyoto. 다른 호텔 예약이 꽉 찼을때 소개받은 곳이었다. TV 없는 2층 침대방으로 두명 합해서 5800엔이었다. 7박 8일간 TV를 본 것은 첫날 뿐이었기 때문에 TV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설령 TV를 보고 싶었다고 해도 화요일 심야에 하는 데스노트는 야간열차에서 잠을 설칠 때 지나갔고, 목요일 심야에 하는 코드기어스는 이때만 해도 오사카의 호텔에서 볼 생각을 못했다.
제일 먼저 들어가게 되는 곳은 3층이었다. 카운터와 거실이 있는 곳이었다. 예약할 당시의 이름을 말해주고 여권을 보여준 후에 돈을 내고 열쇠를 받았다. 열쇠 관리비 5000엔을 맡겨두었다. 다음날 체크아웃할 때 돌려받게 되었다.
3층에는 미국의 거실을 연상하는 주방과 아늑한 소파, 테이블이 많았다. 거기에 그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 서양인이었다. 컴퓨터는 두 대. 100엔에 15분.
실제 방은 이 아랫층인 2층에 있었다. 우리 방은 계단 바로 옆방. 방에는 오로지 2층침대와 테이블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침대차처럼 침대의 담요는 스스로 깔아야 하는 것이었다. 동생이 이리저리 불평하고 이불을 2층으로 던지려다가 나에게 던져버리는 소란 끝에 겨우 2층의 담요를 깔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야 발의 물집을 없앨 수 있었다.
이때가 약 4시였다. 나는 '언니 배고파~'라는 소리를 거의 무시하며 자버렸다. 수면부족의 효과가 이제서야 나타났다. 버스를 탈때는 멀쩡했는데.
낮잠 아닌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것은 6시를 넘어서였다. 나가서 먹기도 귀찮았기 때문에 호텔 근처에 있던 편의점에서 치킨 6조각과 과자, 음료수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편하게 먹을 수 있다면 서양인들 눈앞이라도 상관없었던 나와는 달리 동생은 싫다면서 의자도 없는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다 먹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 1인용 샤워룸과 화장실, 세면대. 이것저것 도쿄의 호텔보다는 훨씬 품질이 좋았다. 그리고 우리가 한 것은 맘껏 컴퓨터하기. 동생에게 언어 설정 바꾸는 것을 알려준 후 거의 한 시간 반을 컴퓨터 앞에 붙어있었다.
내일은 금각이다... 실물로 보는 화려한 금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상상 속에 일찍 잠들어버렸다.
다만 사람, 외국 나가서 책임감 느끼면 수면부족도 극복하는구나...라는 것을 체감한 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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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 17(수요일. 6일째)
새벽 6시에 세면대에 가서 씻었다. 당연히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수건이 없었다. 조금 곤란했다.
일찍 간 보람은 있어서, 약 10분쯤 후에는 세면대에 사람이 몰렸다고 한다.
6시 반이 되자 방송이 나왔다. 몇분에 어느 역에 도착할 것이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여섯 시간동안 그야말로 세상 모르게 잔 동생은 완전히 팔팔한 상태로 내려왔다. 내가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도둑 걱정도 없었다. 나는 밤샘에는 익숙하기 때문에 이 상태로는 아직 충분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문제는 물집이 생긴 발이었다.
밖은 아직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 없는데...
교토역에 도착해서 바로 앞에 보이는 간이 대기실에 들어갔다. 추위를 막을 수 있고 의자에 여유가 많았다.
어차피 이 나라 사람도 아니겠다, 배고프겠다, 주변 눈치 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노부코씨에게 받은 도시락을 열었다. 유부초밥이다~!
우리 나라의 삼각형 유부초밥과는 달리 일본의 초밥은 사각형 주머니에 밥을 집어넣은 것이었다. 맛은 똑같았다. 오랜만에 먹는 유부초밥인데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더욱 맛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아침을 다 먹고 역을 구경하게 되었다. 문 연 곳이 거의 없었다. 1회용 우산 정도를 파는 매점은 다행히 문을 열었다. 1회용 비닐우산 하나와 반짇고리를 하나 샀다. 그리고 역 출입구 바로 옆에 있는 코인라커를 찾아 가방을 넣었다. 소형 라커(300엔)은 배낭 두 개를 겨우 넣을 정도였지만, 더 큰 것들은 멀리 있었기 때문에 그냥 300엔짜리에 가방을 밀어넣었다.
가끔 가방도 압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역 앞에는 시버스 정기권 판매소와 다양한 버스 승차장이 있었다. 교토 남부의 중앙에 자리한 교토역은 종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버스 승차장에는 알파벳+숫자 형태로 이름이 붙어 있었고, 비슷한 곳으로 가는 버스가 비슷한 승차장에서 정차했다.
시버스 정기권 판매소에서 시버스 1일 승차권을 샀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버스요금은 거리에 따라 요금이 늘어나지만, 1000년의 수도로 관광 명소가 많은 것 때문인지 교토에서는 약간 다르다. 교토의 중심부는 일단 220엔 구간으로 정해져서, 이 안에서는 어른 220엔, 어린이 110엔으로 탈 수 있다. 이곳만 운행하는 버스도 따로 있다. 주로 버스 뒤에서 승차권을 뽑지 않는 버스이다. 이런 버스는 내릴때 220엔만 주거나 카드를 넣으면 된다. 대다수의 명소는 220엔 구간 안에 있다.
그리고 그 220엔 구간 밖을 벗어나면 거리에 따라 요금이 늘어난다. 이쪽의 버스는 먼저 뒤에서 승차권을 뽑은 다음, 버스 앞에 있는 요금판과 자신이 뽑은 승차권 번호를 확인해서, 내릴때 해당되는 번호의 버스비를 내고 내린다. 승차권 번호는 자신이 탄 곳에 따라 다르다.
(교토의 버스는 뒤에서 타고 앞으로 내린다.)
긴카쿠지에서 돌아올 때의 버스가 이런 버스였는데, 5번 승차권은 220엔 구간이라서 요금 증가가 없었지만, 1~4번 번호판 밑의 요금은 승차장 하나를 지날 때마다 늘어나서, 교토역에 도착할 당시 1번 구간에서 탄 사람들은 거의 400엔을 줘야 했다.

교토 시버스 1일 승차권. 대인 500엔, 소인 250엔.
시버스 승차권은 처음 찍었을 때 날짜가 새겨지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이 사는 것도 가능했다. 다음날 것까지 합해서 각각 2장씩, 4장을 샀다. 표를 살 때 교토 버스노선표를 받았다. 정말 이렇게 편한 노선표는 처음봤다. 거기에 덤으로 교토가 꽤 작은 도시라고 생각해버렸다.
내가 받은 노선표는 그리 크지 않은 가이드용 종이였다. 펼치면 B3 정도의 크기가 될 종이에는 교토의 지도가 대략적으로 그려져 있었고, 거기에 버스 노선이 전부 그려져 있었다. 버스가 27개... 거기에 관광용 특수버스인 라쿠버스 세 대 포함해도 30대. 적다...
(목포에서 사는 친구 曰, 광주는 버스가 많아서 어지럽다지만, 나는 한 도시의 버스 노선이 30개라는 것에다 그걸 지도 전체에 빠짐없이 표시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래도 교토의 행정단위는 '府'. 도쿄 도의 아래이며 오사카 부와 동격이다.
동(히가시)-서(니시) 혼간지 두 개 다 교토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혼간지 두 곳 다 공사중만 아니었다면 한때 교토를 휘어잡았다는 두 절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교토역에서 더 가까운 히가시혼간지는 이게 절인지 전통 가옥인지 알 수 없는 크기였다. 한 블록의 거리를 무시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등교하는 학생들을 따라 니시혼간지에 갔다. 도쿄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에서도 남학생들의 교복은 가쿠란(차이나 컬러)이었다.
니시혼간지는 공사중이었다. 히가시혼간지보다는 더 커 보였지만 그 대부분이 출입금지라서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다. 결국 성과없이 다시 교토역으로 걸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우산을 하나 더 사버렸다. 두 명이 쓰기에는 어정쩡한 크기였기 때문이다.
아직 9시도 안된 시간이었다. 따뜻한 정기권 판매소에서 잠시 쉰 다음 우리는 바로 그 앞의 D2 정거장에서 206번을 탔다. 목적지는 기요미즈데라로 향하는 기요미즈미치. 8정거장이면 도착하는, 상당히 가까운 곳이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는 친숙함을 맛보면서 창밖 구경을 했다.
그리고 눈앞의 버튼을 보며 잠시 굳어버렸다.
'とまります(정차합니다)'
...이거 분명히 정차용 버튼인데...?
자세히 보니 이 버튼은 우리 나라처럼 창틀에도 있었고 앞자리 의자의 뒤에도 붙어있었다. 이전에 소풍 갈 때 빌렸던 화순 시내버스를 떠올리게 하는, 작은 버스 앞에는 안내용 전광판이 있었다. 우리처럼 광고 투성이가 아니었다.
'다음은 ***역 입니다'
'Next stop is *** station'
외국인을 생각한 것일까. 안내판에는 일본어(한자 혼용)-일본어(히라가나)-영어로 된 안내문이 반복적으로 지나갔다. 거기에 놀라운 것은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역은 고죠사카. 고죠사카입니다. 기요미즈데라로 가실 분은 여기에서 내리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이 그 정거장에 도착할 때까지 세 번 나왔다. 마찬가지로 영어로도 나왔다.
(사실은 고죠사카보다는 기요미즈미치에서 내리는 게 더 빠르다)
기요미즈미치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곧 한국어도 많이 들렸다. 이 사람들, 비오는데도 우산 내팽개치고 사진을 찍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니 근처 안내도가 보였고, 절 근처에서는 늘 있을 만한 기념품 가게가 가득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많은, 기모노차림의 헬로키티~ 아쉽게도 이번에는 인형이 없어서 뭘 살 수 없었다.
고죠사카에서 오는 길과 기요미즈미치가 만나는 길, 그 옆에는 3년 고개(산넨자카)가 있다. 이쪽으로 가면 야사카 신사로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와보기로 정한 곳이었다. 3년 고개의 위치는 잘 모르겠지만, 근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거기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르막길을 얼마 올라가자 곧 절이 보였다. 기요미즈데라였다. 그 옆에는 신사 하나가 작게 있었다.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입장표. 300엔.
본전 안에 들어갔다. 아무리 봐도 일본 절은 절인지 신사의 변형인지 알 수 없었다. 절 안에 기념품 가게와 오미쿠지가 이곳저곳에 분포해 있었다. 신사와의 차이점이라면 파는 사람이 하카마 차림의 무녀가 아니라 절에 고용된 듯한, 평범한 옷차림의 어르신들이었다는 점이다.
아직 비는 그치지 않았다. 기요미즈데라는 맑은 약수터가 명물이라는데 그곳까지는 내려갈 수 없었다. 길이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단지 그 안에서만 몽환적인, 안개낀 산을 한참 구경하다가 내려왔다.
오미쿠지를 하나 뽑았다. 100엔. 산가지 하나 뽑았더니 숫자 '6(六)'이 나왔다.
결과는 말길(末吉). 그 외의 말은 해석할 수 없었지만 일단 흉(凶)이 아니니 나쁘지는 않겠다고만 생각했다.
기요미즈데라 옆에는 토리이 하나가 있었다. 지주 신사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신사지, 기념품 가게나 다름없었다. 신사의 목적은... 연을 이어주는 것이라나?
비는 거의 다 그쳤다.
그 후에 기념품가게 사람에게 물어서 3년 고개로 들어섰다. 여기에서는 안 넘어지거나 구르거나 둘 중 하나. 길도 내리막길인데다 방금 전까지 비가 왔기 때문에 미끄러웠다. 3년 고개에 이어 바로 2년 고개(니넨자카)가 이어지는데, 동생은 하필 2년 고개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지도를 보면서 야사카 신사를 찾아가는데 길이 맞는지 궁금해서 식당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제대로 가고 있었다.
내리막길을 지나 큰길로 들어섰다. 여기에서는 일직선으로 쭉 가면 게이샤의 거리라는 기온과 그 앞의 야사카 신사로 향하게 된다. 기온 거리는 쉽게 보였다. 모든 인도에 빨갛게 천이 덮고 있었다. 비가 올때는 우산 없이 다닐 수 있어서 괜찮겠다 싶었다.
야사카 신사는 태양신 아마테라스 여신의 동생인 물의 신 스사노오를 모신다고 안내문에 적어져 있었다. 사람이 꽤 많았다. 동생은 비둘기를 졸졸 따라다니고, 처음으로 까마귀를 보았다. 완전히 새까맣고, 깍깍 울었다.
일본에서는 우리와 반대로 까마귀가 길조라고 했던가...?
점심이라도 먹게 기온 거리에 들어섰지만, '교토는 입다가 죽고 오사카는 먹다가 죽는다'는 말처럼 주변에 보이는 것은 식당보다는 옷가게였다. 중간에 기모노 차림의 여자들을 두셋 봤는데 게이샤인지 마이코(견습생)인지 그냥 기모노 입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간신히 토스트 가게를 찾아내서 고픈 배를 달랬다.
그 후에 기온 승차장에서 57번을 타고 교토 회관 미술관으로 갔다. 57번은 뒤에 발권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220엔 구간 밖을 다니는 버스였던 것 같다. 206번과는 달리 앞에도 요금표가 있었다.
회관 미술관 구경은 해볼까 했지만 대영 박물관이나 루브르 정도의 크기가 아닌 한 미술관에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아서 포기. 이곳에서 조금만 걸으면 헤이안 신궁이었다. 회관 미술관에서 헤이안 신궁을 찾는 것은 쉬웠다. 사거리로 나가자 바로 신궁의 토리이가 보였기 때문이다.
헤이안 신궁은 이름대로 '신궁' 이다. 분명 천황 몇 사람을 모신 신사였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이름 안에 일본사 책에서도 본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대극전(大極殿)까지로, 뒤의 본전에는 신주와 일반인 몇 명이 있었지만 일단 밖에서는 들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는 단체관광을 온 사람들이 어디론가 들어가고 있었다. 헤이안 신궁에는 '신원(神苑)'이라는 정원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곳으로 향했다. 이 정원 구경도 예정에 있었던 것이었다. 1인당 600엔이었다.
인공인지 천연인지 알 수 없는 호수와 주변의 숲길,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장식된 다리형 복도를, 막 비가 그친 후의 상쾌함에 젖어가며 구경했다. 수학여행때 본 이화원에 비하면 초라했지만, 크기와 화려함으로 밀어붙이려고 군비까지 빼돌린 태후의 정원에 비하면 훨씬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화원을 지으려고 서태후는 해군 경비까지 가져다 썼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편 전쟁에서 졌다고 한다.)
신궁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신원을 구경하고 나왔다. 점심을 기온에서 이미 먹었기 때문에 이제 갈 곳은 긴카쿠지 하나뿐이었다. 지도대로라면 교토 회관 미술관앞에서 5번이나 100번을 타면 되는데, 어째서인지 우리가 내렸던 곳에는 그 두 버스가 오지 않았다. 결국 지도를 보며 쭉 걸어가서 겨우 버스 승차장을 찾아냈는데, 이 승차장은 미술관 다음역인 동물원1역. 멀리 걸어올 필요 없이 그 근처의 길을 건너서 찾았더라면 금방 5번이나 100번 정거장을 찾았을텐데...
긴카쿠지미치에서 내렸다. 길을 건너자 바로 '철학의 길'이라는 것이 보였다. 절로 향하니까 '철학'을 붙였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인력거를 보았다.
말로만 듣던, 일제시기의 소설에나 등장할 만한 인력거가 아직 교토에 남아있었다. 다리아프니까 절 구경하고 돌아갈때 타볼까 했지만 1인당 2000엔을 넘는 요금 때문에 주저했다. 결국 돌아갈때도 그냥 돌아갔다.
후에 어머니께 '비싸도 그런 건 경험이다' 라며 혼나게 된 것은 당연하다.

은각 관음전 참배표. 500엔.
(말이 참배표지, 이거 완전히 부적...)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금각사처럼 은각사도 은으로 되어있을까~ 하고 궁금하게 여겼던 적이 있다. 그러나 긴카쿠지는 은이 아닌 약간 차분한 색을 자아내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 이와 반대편에 있는 화려한 금각과는 완전한 대비를 이룬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아름다운 은각을 연출해낸다는 은각 관음전은, 지금은 그 앞의 모래 장식에 밀려 허름한 전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교토 북동부에 긴카쿠지가, 북서부에 킨카쿠지가 있어서 거의 반대편에 있다)
표를 살때 받았던 팜플렛을 보니 긴카쿠지에는 크게 볼만한 것이 관음전(은각)과 본당 정도였다. 약도를 보면 산을 올라가서 전망소와 달맞이산까지 가게 되고 그 뒤에 '大'가 그려진 산이 있지만, 아무튼 우리 나라의 화려한 절, 일본의 신사와 꼭 닮은, 중앙에 본전(대웅전)이 있고 그 옆에 몇 개의 전각이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절이라기보다는 소박한 귀족 저택 정도의 이미지였다.
긴카쿠지에서 나올 때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이상하게 교토에는 이곳저곳에 아이스크림, 특히 소프트 아이스크림 집이 많았다. 그리고 반드시 녹차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여기가 아이스크림과 관련있는 도시인가?
긴카쿠지미치에서는 100번이나 17번을 타면 교토역 직행이다. 17번을 타고 느긋하게 앉았다. 항상 버스마다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작은 버스였지만 앉을 공간은 넉넉하게 있었다. mp3을 들으며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동생을 받쳐주며 창밖을 내다보며 30분 정도를 앉아있었다.
교토역에서 내린 후에 바로 가방을 챙겨서 나왔다. 미리 출력한 약도를 따라 호텔을 찾아갔다. 아아, 한블록 = 10분이라고 계산했어야 했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한블록 = 5분 이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도쿄의 것보다는 더 짧았고 주변에도 이것저것 많았다.
호텔의 이름은 K's House Kyoto. 다른 호텔 예약이 꽉 찼을때 소개받은 곳이었다. TV 없는 2층 침대방으로 두명 합해서 5800엔이었다. 7박 8일간 TV를 본 것은 첫날 뿐이었기 때문에 TV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설령 TV를 보고 싶었다고 해도 화요일 심야에 하는 데스노트는 야간열차에서 잠을 설칠 때 지나갔고, 목요일 심야에 하는 코드기어스는 이때만 해도 오사카의 호텔에서 볼 생각을 못했다.
제일 먼저 들어가게 되는 곳은 3층이었다. 카운터와 거실이 있는 곳이었다. 예약할 당시의 이름을 말해주고 여권을 보여준 후에 돈을 내고 열쇠를 받았다. 열쇠 관리비 5000엔을 맡겨두었다. 다음날 체크아웃할 때 돌려받게 되었다.
3층에는 미국의 거실을 연상하는 주방과 아늑한 소파, 테이블이 많았다. 거기에 그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 서양인이었다. 컴퓨터는 두 대. 100엔에 15분.
실제 방은 이 아랫층인 2층에 있었다. 우리 방은 계단 바로 옆방. 방에는 오로지 2층침대와 테이블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침대차처럼 침대의 담요는 스스로 깔아야 하는 것이었다. 동생이 이리저리 불평하고 이불을 2층으로 던지려다가 나에게 던져버리는 소란 끝에 겨우 2층의 담요를 깔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야 발의 물집을 없앨 수 있었다.
이때가 약 4시였다. 나는 '언니 배고파~'라는 소리를 거의 무시하며 자버렸다. 수면부족의 효과가 이제서야 나타났다. 버스를 탈때는 멀쩡했는데.
낮잠 아닌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것은 6시를 넘어서였다. 나가서 먹기도 귀찮았기 때문에 호텔 근처에 있던 편의점에서 치킨 6조각과 과자, 음료수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편하게 먹을 수 있다면 서양인들 눈앞이라도 상관없었던 나와는 달리 동생은 싫다면서 의자도 없는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다 먹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 1인용 샤워룸과 화장실, 세면대. 이것저것 도쿄의 호텔보다는 훨씬 품질이 좋았다. 그리고 우리가 한 것은 맘껏 컴퓨터하기. 동생에게 언어 설정 바꾸는 것을 알려준 후 거의 한 시간 반을 컴퓨터 앞에 붙어있었다.
내일은 금각이다... 실물로 보는 화려한 금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상상 속에 일찍 잠들어버렸다.
- 교토 회관 미술관역과 동물원역의 진짜 이름은 '교토 회관 미술관 앞', '동물원 앞'이다. 교토의 버스 승차장에는 이렇게 '~ 앞'이 붙은 승차장 이름이 많다. 이후에 가게 된 긴카쿠지의 경우에도 긴카쿠지마에(은각사 앞)라는 승차장이 있었으며, 킨카쿠지와 료안지 사이에 있는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멈추는 것도 '리츠메이칸 대학 앞'이라고 되어 있다. [Back]



아아아.. 헤이안 신궁.. 가고 싶어요 -_ㅠ
정원 최고였습니다
꼭 봄에 다시한번 가보고싶은 쿄토입니다!
작년 여름휴가때 일주일가량 쿄토에서 지냈는데 더운거빼면 정말 좋았습니다
마침 제가 있을때가 37도 까지 올라가는 엄청 찌는 날씨였더랍니다;
그때문인지 근처의 '아라시야마'에 갔을때가 상당히 기억에 남네요.
'아라시야마'가 교토 구역을 나누었을 때 그 중 하나였던 것 같더군요.
일본은, 여름에 가기에는 곤란하지요. 더워서.
뭔가 낯익은 것들이 보이는군요 ^^;
교토 1일 패스는 저도 한 2개정도 들고 있는 ^^;
기요미즈데라는 역시 돈내고 들어가셨군요 ;ㅁ;
들어가고보니 반대로 오면 공짜여서 당황한;;;
...그러고보니 어디에선가 공짜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잊어버렸어요
인력거는 정말 한번 타보시지 그러셨어요. 다시 그런 기회를 찾기 힘드실텐데요^-^;
다른 사람이 타는 것 보니까 재밌어보이던데 말이죠. 아까워요
언제쯤 가볼 수 있을지 ㅜ_ㅜ
교토하면 자꾸 켄신이 떠올라요 'ㅁ'
그러고보니 교토 어디에선가 바람의 검심에 나왔던 골목이 있었다던데, 만화 안 봐서 모르겠어요